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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디자인/디자인

프로젝터는 제너레이터처럼 살 수 없다

 
프로젝터는 정말 다르다. 나를 포함한 주변 프로젝터를 보면, 프로젝터가 제너레이터나 매니페스터와 얼마나 크게 다른지 느낄 수 있다. 다르다는 건 멋진 일이지만 그게 늘 좋았던 것은 아니다.


왜 대체 나는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그 포용적이고 생성적인 그 에너지가 나오지 않을까? 정말 의문이었다. 왜 나는 열심히 찾아 헤매고 있는데 남들에게 당연히 있는 그게 없을까? 그걸 인정해 버리면 진짜 그게 기정사실이 될까 봐 차마 의식적으로 이 질문을 할 수는 없었다. 휴먼 디자인을 몰랐다면 아직도 그걸 인정하지 않은 채 애쓰며 살고 있었을 것이다. 

대체 누가 그걸 알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세상에서 우리의 일을 통해 대가를 얻고 세상을 발전시키며 나아간다. 세계의 역사가 거대한 하나의 건축물이라면 모두가 조금씩 그 건축에 동참하고 싶을 것이다. 

워라밸도 있고 조용한 퇴직이란 말도 있지만, 나는 정말 '일'로 성취하고 싶었다. (예술 계통의 일을 하고 있다) 작은 성취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럴수록 진정한 성취, 그러니까 얼마나 높은 곳에 올라가느냐가 아닌 내게 존재로서의 충족감을 가져다 주는 성취는 궁극적으로는 불가능함을 알았다. 제너레이터는 그게 된다. 제너레이터는 자신을 바라보고, 그렇기 때문에 동시대적 맥락 속에 들어가 역사를 쓰는 일을 해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건축가가 아니라 건축가를 가이드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프로젝터에겐 탈진의 문제가 있고, 또한 에너지의 방향에 문제가 있다. 프로젝터는 자신이 아닌 타인을 본다. 그것은 시각의 문제, 존재의 문제인 것이다.



 

이제는 안다. 세계의 건축가는 제너레이터고, 프로젝터는 제너레이터에게 그 몫을 넘겨줘야 함을. 어떻게든, 어떤 모양으로든 그 사이에 나를 욱여넣을 필요가 없다. 휴먼 디자인을 알게 되고 난 후, 여전히 일을 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마음이 많이 달라졌고 내 분야에서 뭔가를 이뤄야 한다는 부담감을 덜었다.


프로젝터는 타고난 가이드다. 그 건축가들(천골 존재)을 가이드하기 위해 존재한다. 여기에는 얼마나 깊은 편안함이 있는가. 그러나 프로젝터가 프로젝터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 이상의 시스템에 정통해야 하고 식별력을 사용하기 위해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 그리고 조건화에 의해 추구해 왔던 많은 것들을 내려놓는 것이 필요하다. 나 또한 이 과정 중에 있고, 아마 이건 평생의 과정이 될 것이다.
 
 

 
https://www.jovianarchive.com/Stories/9/The_Evolving_Role_of_the_Projector_and_the_Necessity_of_Education

The Evolving Role of the Projector and the Necessity of Education

Now is the time for the Projector to take on its role as a new kind of leader - as a Guide, an Advisor. Learn from Ra why education is so important.

www.jovianarchiv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