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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디자인/디자인

우리는 자신과 반대로 살아간다

 

 

요 몇 년간 "너 자신이 되어라"라는 슬로건이 유독 많이 보인다. 이전엔 영적 구도자나 하는 말이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인 게 되었다. 그런데 그 '나'란 뭘까? 그걸 더 잘 알기 위해 MBTI를 보기도 하고, '나 알아가기' 워크샵이 열리기도 한다. 좋아하는 것들을 더 해보기도 하고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나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는가? 여기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나는 나를 절대 스스로 알 수 없다.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것에 오해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나'에 불과한 것이다.


사람들을 보면, 모두가 자신과 반대로 살아간다. 차트를 보면 알게 된다. 내가 나를 안다고 생각하는 것에 얼마나 깊은 수준의 착각이 있는지 말이다.

 

 

나의 차트(왼쪽)와 내가 되길 원하는 나(오른쪽). 위 차트를 가진 사람의 경우 나의 정체성을 찾는 것, 나를 증명하고 주목받는 것이 중요할 것이며, 영감을 찾으려 할 것이고 정신적으로 확고하고 싶어하고, 더욱 감정적인 사람이 될 것이다. 그게 이 사람에게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조건화를 받는다. 우리는 손가락 하나마다 3조 개의 중성미자neutrino 가 관통하는 행성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시시각각 영향을 미치는 트랜짓,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영향을 받고 조건화된다. 우리는 이미 7세쯤이면 스스로를 자각하기도 전에 비자아로 굳어진다.


우리는 나에게 없는 부분을 가져야 한다고 느끼게 되고, 거기에 압도되어 그 능력을 계발시켜야 한다고 여긴다. 그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걸 추구하는 게 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내가 원하는 걸 하는게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여기는 이런 상황에서 누가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자아 찾기를 시도해 본 후 허무함을 느껴본 적이 없는가?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것을 찾을수록 우리는 진정한 자신에게서 한없이 멀어진다. 


우리는 보통 자신에게 없는 것을 추구하고, 자신이 원래 갖고 있는 것은 그렇게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다. 자신이 원래 갖고 있었던 어떤 것은 부끄러워하거나 버리고 싶어 한다. 통합 채널을 가진 사람이 자신만 생각하게 되어있는 생존 방식을 숨기기 위해 과도하게 타인에게 친절해지거나, 18-58 채널의 비판하는 재능을 가진 사람이 이를 잘못된 방식으로 쓰면서 수치심을 갖는 모습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것이 본질적인 자기혐오다. 자기혐오란 '난 내가 싫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일상에서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가면서, 삶에 진정한 편안함을 갖지 못하는 것이 자기혐오다. 진실되지 않은 것들이 삶에 가득해서 내 삶을 돌아볼 때마다 뭔지 모를 허전함이 느껴지고 그렇게 조용히 죽어가는 것이 바로 자기혐오다. 자신의 차트를 다루게 되면 내 인생에 얼마나 많은 자기혐오가 존재했는지, 그리고 나로 살게 하지 못하게 만드는 많은 속임수가 존재했는지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