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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디자인/인사이트

영화를 영화로 보라

 

며칠 전 핫플이라는 한 술집에 가게 됐다. 거긴 분위기며 인테리어며 음악이며 메뉴며 딱 8~90년대에서 멈춘 듯한 곳이었는데,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거기에 있으니까, 현재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스산하고 차가운 지금의 2024년은 잊히고 그 시간에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그 시절의 추억을 그리워하며 거기에 있는 것 같았다. 따뜻하다 못해 뜨겁고, 치기 어리고, 아직 시도해 볼 것들이 많고, 사람들을 결집할 만한 화두가 있고, 인터넷도 없이 허술하지만 좀 더 인간적이라 느껴졌던 그때. 그것이 비단 과거의 추억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객관적으로 과거는 지금과 달랐음을 안다. 우리 테이블에서도 ‘예전엔 좀 더 지지할 만한 큰 정치적 인물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는 한탄이 시작됐다.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이 과거에 의존하는 트렌드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그렇다. 우리는 과거가 그립다. 그러나 그것이 과거와 같은 모습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때가 얼마나 일시적이었고, 우리에게 각별한 시대였는지 알고 흘려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이 나빠졌고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회의감과 무력감에 짓눌릴 것이다. 삶이 행복을 위해서라는 명제는 너무나 많은 오해를 낳았다. 우리는 볼 게 있어서 여기에 있다. 우리는 따뜻한 세상도 봐야 하고, 차가운 세상도 봐야 한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보게 되어 있다. 사람들이 더 이상 어려운 사람을 돕지 않고, 기후 위기가 오고 각국이 긴장 상태가 되고, 폭동이 일어나고 원자력 발전소가 늘어나고 과거의 영광을 떠나 다시 퇴보하는 것도, 알고리즘으로 인해 자신과 공감대가 있는 쪽의 의견만 듣고 더욱 극단적으로 변해가는 것도, 그래서 우리가 차가운 생존을 향해 나아가는 것도, 우리가 꼭 보게 되어 있는 일이다.


현재 노드에 있는 51번 관문과 57번 관문은 2027년의 글로벌 사이클과 같은 조합이다. 노드가 51, 57로 바뀌자마자, 한동안 있던 그나마 사회적인 장면이 사라져 버리고 각자가 공동의 아젠다 없이 딴생각을 하는 느낌이다. 나 자신도 더 차가워지고 나만 바라보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그런 장면이 보이고 그런 느낌이 든다 해도, 그걸로 선택을 내리면 안 된다.


“한계의 수용이 초월의 첫 단계다.” 명왕성에 있는 60번 관문이 말한다. 이 세상에 회의감을 갖고 이전의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돌리려 하는가? 과거의 따뜻함을 추억하며 거기 집착하거나 붙어있으려 하는가? 영화를 영화로 보라. 한계를 인식하라. 세상을 이전으로 되돌려 놓으려고 하지 마라. 그것 말고도 할 일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