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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디자인/실험 일지

2027년을 3년 반 앞두고

산책 중에 문득 내일이 2027년 2월 15일이 되기까지 정확히 3년 반 남은 날이라는 게 떠올랐다. 해당 차트가 들어오기 3년 반 전부터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니, 오늘이 이 영향권에 들기 전 마지막 날이다. 순도 100프로짜리 계획의 시대(Cross of Planning, 1615~2027)에 있다면, 오늘 부로 끝난 것이다. 
 
폭염에도 불구하고 밤공기는 시원했고, 사람들은 느릿느릿 하천을 거닐고 있었다. 요즘 부쩍 많아진 흉흉한 뉴스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각자는 자신들의 소소한 이야기에 여념이 없었다. 깔깔거리는 딸을 들춰메고 가는 젊은 아빠가 눈에 들어왔는데, 왠지 이런 평범하기 그지없는 장면을 눈에 담아두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이런 장면을 얼마나 오래 더 볼 수 있을까? 일상적인 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며, 평범한 것은 언제나 가장 특별한 것이다. 
 

 
 
사람이 없는 시간 산책을 다니지만, 최근 몸이 많이 예민해져서 사람들 옆을 지나갈 때마다 몹시 괴롭다. 전기 충격기를 맞는 것 같은 느낌과 귀를 송곳으로 찌르는 느낌이 든다. 만원 지하철이 오늘만큼 힘든 적이 없었다. 아마도 PHS의 영향인 듯 한데 좀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언제나 내게 평온함을 안겨주던 이 산책길이 부드러운 밤바람에도 불구하고 이제 그렇게 평화롭지만은 않다. 
 
오늘은 내 삶을 바꿀만한, 또 하나의 충돌을 겪은 날이기도 했다. 새로운 레이브 리턴이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은 때다. 이럴 때 얼마나 내가 쉽게 흔들리고 불안정해질 수 있는지 알 것 같다.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얼떨떨함, 감정의 소용돌이가 있다. 여기서 내 불안정함을 인지하고, 어떤 속단도 내리지 않고 약간 거리를 둘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그래도 장족의 발전이라고 느껴진다. 
 
이 모든 것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지는 모르겠다. 이것이 나의 생존을 보장해 줄지 그것도 모르겠다. 2027년이 다가온다. 상상에만 존재해왔던, 어딘가 잠들어 있던 용과 같았던 그 시간. 이 또한 시간표가 다 주어졌지만, 문명이 어떤 식으로 붕괴하고 레이브가 어떤 식으로 나타날지는, 진짜로 보기 전까진 모른다. 
 
2023년 8월 14일, 오늘을 기념하며 한번 오늘의 이 '모름'을 기록해보고 싶었다.  이 '모름'의 천진난만함을 기억하고 싶었다. 다시 오지 않을, 아무 것도 모르는, 이 평범하디 평범한 날의 특별함을 기억하며. 계획의 시대가 412년 동안 우리에게 준 평화로움을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