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휴먼디자인/트랜짓

2022년의 위기, 그리고 트랜짓

 

 

2023년 4월 20일의 트랜짓

 

 

60번 관문이 트랜짓에 들어온 2022년 1월부터 약 1년간, 그 짧은 시간 동안 우리가 보게 된 장면은 이렇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러시아에 대한 제재로 인한 에너지 가격 상승, 식량난,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영원 불패로 보이던 부동산, 주식 시장, 은행이 휘청거리는 장면,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에 온 세계가 끼리끼리 편을 가르고 글로벌하게 연결된 공급망이 파편화되어 자국 보호 정책으로 들어서는 장면. 팬데믹이 끝나고 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란 희망을 가졌던 세계 경제는 이제 다시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만다라에서 마지막 관문인 60번은 ‘한계’다. 2027년까지 남은 마지막 관문. 그 60번 관문이 어떤 한계를 가져올지, 그게 진짜 한계로 느껴질지 궁금했었다. 그런데 1년간 지나온 이 장면이 한계가 아니라면 과연 무엇일까?

 

 

그런데 60번 관문을 찬찬히 살펴보면, 이 한계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실상은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가져오기 위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3번 관문이 흐르는 강과 같은 ‘혼란’이라면, 60번 관문은 둑과 구조물일 것이다. 한계가 없으면 물살이 바뀌고 새로운 질서가 창조되지 않는다. 우리가 마주한 이 한계가 변이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비슷한 시기, 천왕성의 2번 관문을 만났다. 뉴스에서는 각 나라가 이 한계에 대응하기 위해 어떤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지가 연일 보도되고 있다. 원자재를 어떻게 대체할지, 어떤 새로운 기술로 전환할지, 그 기술을 어떻게 차지할 것인지, 4차 산업 혁명에 어떻게 참여할 것인지…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다. 전 세계적 방향성의 전환이다. 팬데믹이나 전쟁, 기후 위기, 미·중 갈등과 같은 일이 없었더라면 보지 못했을 광경이다.

 

2번 라인은 인류의 전체 방향성을 정한다. 우리는 인식할 수 없는 방향성이다. 전체성으로서 우리가 이동해 가는 곳, 변이를 통해 진화해 가는 곳은 2번 라인에 있는 단극 자석에 달려 있다. 우리가 어떤 곳을 거쳐 가는지는 알 수 없고 우리가 정할 수도 없지만, 그 방향이 ‘아름다움’임을 우리는 들어 알고 있다.

 

2022년 11월에는 ChatGPT가 출시되었다. 2020년대부터 블록체인, NFT, 웹 3.0과 같은 기술 때문에 온 세계가 들썩였는데, ChatGPT가 (그리고 다른 여러 제너레이티브 AI가) 등장한 것이 이 2번 라인 (2022.4~2023.5)시기라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AI는 지금까지 등장한 여러 기술을 하나로 잇는 초석으로 보기도 한다.

 

 

최근 거의 모든 관문이 개인성 관문에 있다. 개인의 변이는 집단과는 완전히 다르다. 개인 회로는 그저 앎이 있거나 없거나다. 논리적이지도, 경험적이지도 않은 것이다. 참 이상한 게 집단은 참 열심히 정보를 축적하는데, 정작 인류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곳은 개인이라는 것이다. 집단이 그토록 패턴을 열심히 구축해도, 패턴은 언제나 변이에 의해 파괴될 수 있다. 진정한 ‘삶의 길’은 변이에 있다.

 

이 개인성, 앎, 변이에는 언제나 우울감이 동반된다. 변이가 일어나기 전에는 나비가 번데기에 있는 것처럼 언제나 멈춰있는 시간이 있고, 이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모르면 그저 우울하고 뛰쳐나가고만 싶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기에 붙잡고 있어야 할 말은 개인 회로의 교훈 뿐이다. “수용하라.” 그리고 “기다려라.”

 

숫자에 불과한 트랜짓이, 이렇게 인과로 펼쳐져 나오는 걸 보니 참 경이롭다. 여기서 두렵지만 잠잠히 있을 수 있는 건 이 숫자를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고, 예측할 수 있었기 때문이고, 마음의 준비를 했기 때문인 것 같다.

 

 

 

*아직 트랜짓을 오류 없이 해석할 역량이 되지 않음을 밝힌다.